진공 형광 디스플레이 (VFD)
갑작스럽습니다만, 요즘 인기 있는 소위 7세대 휴대용 게임기들은 정말 놀라운 물건들이죠. 휴대용 미디어 장비라 부를만한 소니의 PSP, 작은 덩치에 펜입력 기능과 와이파이 무선통신 기능 등을 완비한 "게임용 PDA" 닌텐도 DS 등, 제작사가 외계인의 오버테크놀로지를 입수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기계들입니다.

하지만 NDS를 처음 입수했을 때 받은 신선한 충격은, 20여년전 닌텐도의 "게임 & 워치" 걸작인 "투스크린 동키 콩" 을 처음 보았을 때의 신기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죠. ^^

위의 NDS와 아래의 동키 콩 둘 다 액정 디스플레이를 갖고 있습니다만, 이들 LCD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지난 20여년의 세월동안 인간의 재주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요즘은 동키 콩 정도의 LCD 게임은 아침식사용 콘프레이크 등에 사은품으로 동봉되어 올 정도로 값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죠.

그런데, "퐁" 과 "인베이더" 등 브라운관(CRT) 방식 업소용 비디오게임이 발명된 70년대 말, 그리고 그것을 어린이용 전자완구로 만든 것인 게임&워치 등의 휴대용 LCD 게임들이 발명된 80년대 초반- 그 사이에 놓인 몇년 안되는 기간에 등장해서 짧지만 높은 인기를 누린 물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VFD 방식 게임기들입니다.

- 라고 거창하게 소개드렸습니다만 VFD, 즉 진공 형광 디스플레이라는 것은 다른게 아니라 바로 이 물건입니다:

↑ "7분절" 방식 VFD. 0~9의 숫자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탁상형 전자계산기의 디스플레이 등에 쓰이는 부품이죠. 물론 만들기에 따라서는 숫자뿐 아니라 알파벳도 표시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 엘리베이터 등에 잘 쓰이는 "알파뉴머릭" VFD.

나중에는 아예 도트 매트릭스 방식으로 만들어서 숫자, 글자, 기호 등을 표시할 수 있게 된 물건들도 나왔죠.

↑ 도트매트릭스 타입은 VFD의 귀족입니다. 사용 전력도 가장 많습니다.

1970~80년대에 수많은 용도로 이용되던 VFD는, 표현능력이 더 좋고 전력 요구량이 작은 액정(LCD)에게 디스플레이의 왕좌를 내어 주었습니다만, LCD보다 만들기 쉽고 더 튼튼한데다 외부온도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LCD는 온도에 민감하죠) 아직도 각종 가전제품 및 실외용 디스플레이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년엔 유기액정 디스플레이(OLED)의 등장으로 인해 그 텃밭마저도 내어주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는 모양입니다.

아뭏든 저 부품이 VFD이고, 그것을 이용해 만든 게임기가 VFD 게임기이죠.

↑ VFD "갤럭시안" 게임. 각각의 스프라이트(?)가 모두 개별적으로 만들어 넣은 진공형광 튜브입니다.
VFD는 표현하고 싶은 모양 그대로 진공형광 튜브를 제작해야 하므로 LCD에 비해 그래픽이 투박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당시 LCD로서는 불가능했던 컬러의 구현이 가능한데다 어두운 곳에서도 선명하게 빛난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 이것은 VFD 베스트셀러인 "팩맨" (일본 토미),

↑ 그리고 역시 토미의 "트론". 토미의 VFD 게임들은 당시 신생기업이었던 영실업이 수입해서 판매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슈팅게임인 "스크램블" 게임이, 동명의 업소용 게임의 인기를 업고 승승장구했지 않았던가요?


검은 화면 안에서 교교하게 빛나는 컬러 형광 디스플레이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서, 당시 영실업의 게임 중에는 아예 쌍안경처럼 양눈에 밀착하고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그래픽을 보라!" 는 것이었겠죠?

(형광이므로 자외선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을 것이고, 눈에 자외선을 직접 쪼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만, 뭐 옛날이니까요.)

VFD 게임들은 오늘날 애호가들이 애타게 찾는 수집품입니다만, 원래 제작 댓수가 (LCD 게임에 비해) 적은 편이라 희소한데다 전자기판이 좀 조잡하게 만들어졌던지 오늘날 실제로 구동이 되는 VFD 게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향수 어린 아이템이죠.

참고로 옛 VFD 게임과 LCD 게임들을 PC에서 구동할 수 있는 일종의 에뮬레이션 사이트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손에 쥐고서 해볼수 있는것과는 큰 차이가 있더군요.
by Werdna | 2007/11/22 15:28 | 전자오락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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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headadv at 2007/11/22 22:53
영실업 패크맨... 일단 어뎁터 연결 접합단자가 약해서 전원부부터 나갔죠. 그걸 어떻게 고정해서 (건드리면 꺼짐) 15만 8000점을 넘겨서 친척 할머니께 전화했더니 3일후 20만 돌파하셨다는 전화고 와서 절망한 기억이 나네요. 제 기계는 그 이후 완전히 맛이 가서 기록 경신이 불가능해졌거든요. T_T;
Commented by Werdna at 2007/11/23 09:19
달소년님 // AC 어댑터 접속단자의 접촉불량 문제는 사소하면서도 골치아픈 문제죠. 요새도 그런 물건들이 가끔 눈에 띄는데...
그나저나 친척 할머님이 대단하십니다.
Commented by glasmoon at 2007/11/24 16:39
도트 매트릭스 타입의 VFD(를 이용한 게임기)가 처음 나왔을때, 컬쳐 쇼크였습니다.
VFD는 뭔가의 모양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워낙 강했던지라... 쿨럭~
Commented by Werdna at 2007/11/24 19:54
유리달님 // 그거 무지하게 비쌌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
Commented by 푷푷 at 2009/01/22 01:18
어릴때 미국에서 아버지가 갤러그 게임을 가지고 오셨었죠 맨밑에 거랑 비슷하게 생겼고 조이스틱도 조그만게 있었습니다. 가벼운것이 반짝거리는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결국 분해! 성과없는 과학교재로 썼었다는..ㅋㅋㅋ 아까워라 ㅠ ㅠ
Commented by 푷푷 at 2009/01/22 01:26
가만보니 트론이랑 동킹콩도 있었군요. 어쩐지 트론 버튼이 낯이익다 했네.. 왜 버튼이 이렇게 인상깊게 남았을까. 뻑뻑해서 잘안눌렸던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동킹콩이랑 미키마우스가 건물에 불끄는게임이 있었는데.. 전자게임 이전엔 태엽감아서 돌아가는 게임도 많았죠ㅎㅎ 그런게임을 내가 했었다니 참.. 아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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