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한무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 갑자 동방삭! 치치 카포 사리사리 센타, 워리 워리 세-뿌리카! 므두셀라 두루미, 허리 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에 고양이, 바둑이는 돌돌이!"

"드디어 돌았구나"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아 이거!" 하시는 분도 계실텐데... "막동이" 구봉서 선생님의 옛 개그인 "김 수한무" 죠. 저게 사람 이름입니다 (극중에선 막동이님의 귀한 아들의 이름). 워낙 귀한 자식이라 이름을 지으면서 좋다는 단어는 전부 다 집어넣어 장수를 기원한 것인데, 덕분에 애 이름 한번 부르기가 엄청 버거워진다는 내용의 개그죠.

19세기말~20세기 초중반까지의 우리 대중문화가 대개 그랬듯, 이것도 일본산 원전이 있습니다. 라쿠고 (만담) 의 고전으로, 만담가 지망생들이 처음에 연습하는 작품이기도 한 "쥬겐무(寿限無, 수한무)" 가 그것이죠:

寿限無、寿限無 (쥬겜무, 쥬겜무)
五劫の擦り切れ (고코노리 스리키레)
海砂利水魚の (카이자리 스이교노)
水行末 雲来末 風来末 (스이교마츠 운라이마츠 후라이마츠)
食う寝る処に住む処 (쿠네루토코로니 스무토코로)
やぶら小路の藪柑子 (야부라코지노 부라코지)
パイポパイポ パイポのシューリンガン (파이포파이포 파이포노슈링간)
シューリンガンのグーリンダイ (슈링간노 구린다이)
グーリンダイのポンポコピーのポンポコナーの (구린다이노 폼포코피노 폼포코나노)
長久命の長助 (초큐메이노 초스케)

"뜻을 풀어놔야지, 음을 써놓으면 어떡해?!" - 뜻은... 수한무 수한무, 다섯겁이 닳아서, 바다 자갈 물고기의, 물흐름이 멈추고 구름이 오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고... 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파이포파이포 파이포노슈링간 부터는 뭐라 번역해야 할지;;
게다가 원래 뜻보다는 음을 즐기는 만담이라고 하니까 (...재미있나요?), 그냥 음만 달았습니다.

이처럼 그때는 대중문화 컨텐츠를 일본것을 로컬라이징하여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와, 이거 일본 XX 로봇 디자인이랑 꼭같네?" 등등, 놀랍고 창피한 일로 생각됩니다만, 그때는 그런 의식이 아예 없었죠.
그러고 보면 우리 30~40년쯤 뒷세대들은 우리를 보면서 "학교 수업을 영어로 해? 자진 식민화야?" 라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네요 ^^;

여담입니다만 쥬겜무나 김수한무와 같은 맥락의 개그가 영어권에도 있는데, 걔는 이름이 "티키티키 템보, 노 사 렘보, 챠리바리 루치 핍, 페리 펨보" 랍니다. 이상한 영어 이름이다 싶지만, 극중에서는 중국 어린이로 나오니까요.

보너스: 막동이 선생님.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구봉서 선생입니다 (맨 왼쪽은 박정희 전대통령).
by Werdna | 2008/02/22 22:30 | 기타등등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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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2/22 23:07
오오 구봉서선생의 젊은 시절!
Commented by ZAKURER™ at 2008/02/22 23:17
어릴 때 정말 열심히 외었는데...누가 더 빨리 하나 초도 재고 말이죠^^
저런 걸 라쿠고라고 하는 게 맞겠죠? 구봉서 서영춘 송해 씨 등의 한국 초기 코미디는 아무래도 라쿠고나 만자이 같은 일본 쪽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지요(음, 지금도 그러려나요?...).
Commented by 후훗 at 2008/02/23 01:31
이름이 길뿐 아니라, 이름이 제대로 효력을 내기 위해선 언제나 풀 네임으로 불러야 한다는 게 중요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풀 네임이란 규칙이 없으면 사실 개그가 성립되질 않죠?
Commented by Werdna at 2008/02/23 10:07
잠본님 // 지금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지은 별명인가 싶은 "막동이" 도, 저때는 잘 어울리는군요...
오오, 세월이여!! OTL

자쿠러님 // 저것으로 경합을 벌이셨군요 ^^
그분들은 일본 공연도 많이 했고, 그쪽 만담가들의 공연을 견학하는 일도 적극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서영춘 선생님과 임희춘 선생님, 배삼룡 선생님과 이기동 선생님 (그리고 나중에는 임하룡-심형래 콤비까지) 등의 콤비는
전통적인 오와라이 콤비의 츠코미와 보케의 형태를 그대로 띄고 있죠.
꼭 모방했다기 보다는 그것이 2인조 코미디의 가장 자연스런 형태이긴 합니다만 (미국도 로웰/하디 등이 있고...)

후훗님 // 예, 그래서 번번히 그 이름으로 불러대죠. 나중엔 듣는 이가 운율을 맞춰 이름을 따라부르고...
결국엔 이름이 나올때마다 마을사람들이 전부 목청높여 따라 부르죠.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하는 운율이, 따라 부르기 딱 좋고 재미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익명 at 2010/07/22 18:53
「寿限無」는「목숨의 끝이 없다. 즉 죽을 날이 없다는 것」
「五劫のすりきれ」는「一劫이라는 것은 3천년에 한번 천상의 사람이 내려와 지상의 바위를 옷으로 계속 쓰담듬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져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다섯번이나 한다는 것이므로 몇만년인지 몇억년인지 다 셀 수 없다」
「海砂利水魚」는「바다의 자갈도 물에 사는 물고기도 다 잡을 수 없다」
「水行末、雲来末、風来末」는「물이 가는 끝, 구름이 가는 끝, 바람이 가는 끝 모두 끝이 없다」
「食う寝るところに住むところ」는「인간은 의식주 중 하나가 없어도 살아 갈 수 없다」
「やぶらこうじのぶらこうじ」는「やぶこうじ라는 나무가 있는데 정말로 튼튼해서 봄에는 어린 잎이 나고, 여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가 맺고, 겨울에는 붉은 색을 곁들여 서리를 견뎌낸다는 경사스러운 나무」
「パイポパイポ~」는 「옛날 중국에 パイポ라는 나라가 있어 シューリンガン이라는 왕과 グーリンダイ라는 왕비의 사이에서 태어난 ポンポコピー와 ポンポコナー이라는 두 사람의 공주로 이 두 사람이 매우 오래살았다」
長久命の長助」는「天長地久라는 문자는 읽어도 써도 경사스럽고 좋은 글자로 그것을 따 와서 長久命. 길게 목숨을 구한다는 의미로 長助」

라고 합니다.
Commented by Werdna at 2010/07/22 19:05
상세한 설명, 정말 감사드립니다. 쉽게 찾을수 없는 좋은 정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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