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의 천재 락 음악가
(전영혁 PD 목소리로) ....지금은 "비" 를 비롯한 우리 가수분들도 영미권 음악계에 진출을 시도하는 시대입니다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음악계는 동서양의 구분이 명확했었죠.

하지만 천재에게는 국경이 없달지, 아니면 정체를 정말 잘 숨겼다고 해야 할지-- 아시아인으로서 1970년대에 락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락스타로 대성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유명한 파로크 불사라 (Farrokh Bulsara) 입니다.

↑ 파로크 불사라 (사진 맨 왼쪽), 12세. 조숙합니다.




불사라는 1946년에 잔지바 섬에서 태어났습니다만 양친 모두 인도인으로, 고등학교까지는 뭄바이에서 다닌 인도 사람이었죠.
불사라 가문은 인도인 중에서 파르시 파 소수민족이었고, 당연히 조로아스터교 신자였습니다.

파로크는 학업 외에도 복싱에도 소질이 있어서 시합에도 출전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만,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음악에 몰두하게 되면서 복싱은 점차 멀리 하게 된 모양입니다. 불사라가 처음으로 밴드를 결성했던 것은 그 나이 겨우 열두살이었을 때였죠.

↑ 불사라는 아까전 사진의 동료틀과 함께 "헥틱스" 라는 밴드를 결성.


잔지바의 정치 혼란을 피해 17세의 나이에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한 불사라는, 일링 미술대학에서 그래픽 아트를 전공했습니다만 졸업 후에는 켄싱턴 시장에 헌옷가게를 열고 옷장사를 했죠, 하지만 그의 천직은 역시 음악이었습니다.
1969년, 락밴드 "아이벡스" 가 불사라의 주도로 결성되죠.

↑ 그룹 "아이벡스" 시절의 불사라. 리더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에도 불구, 아이벡스는 그다지 성공적인 밴드는 아니었습니다.


아이벡스는 "레키지" 로 이름까지 바꿔가며 고군분투하였습니다만 결국 해체. 이후 불사라는 "사우어 밀크 시" 라는 밴드에 가담해 잠깐동안 활동했습니다만, 이 역시 얼마 가지 못해서 해체됩니다.

↑ "사우어 밀크 시" 의 멤버들. 맨 왼쪽이 불사라죠.


1970년 4월, "스마일" 이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져 테일러와 함께, 불사라는 "퀸" 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게 됩니다. 그가 파로크 불사라라는 이름을 버리고 예명인 프레디 머큐리로 법적 개명한 것도 이 때죠.

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스마일은 대학생 밴드이면서도 제법 탄탄한 연주 실력으로 핑크 플로이드, 제네시스, 지미 헨드릭스 등 유명한 음악가들과 같은 무대에 서는 등 나름 활약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스마일에는 스타라 할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인데, 그 공백을 메꿔준 것이 불사라의 독특한 카리스마였죠.

↑ 퀸의 힛 싱글 "보히미안 랍소디" 의 재킷.


↑ 불사라, 아니 머큐리는 대학 전공이었던 미술 솜씨를 살려 밴드의 문장도 직접 그렸습니다.


1971년에 베이스 주자인 존 디콘을 영입해 사운드를 완성한 퀸은, 의외로 긴 연습기간을 거쳐 1973년 첫 앨범 "퀸" 을 발표합니다. 락 역사의 한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죠.

↑ 퀸의 첫 앨범, "퀸". 발매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음반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음반의 수록곡들은 나중에 발매되는 수많은 "베스트" 컴파일레이션에는 거의 끼어 있질 않죠.
이 앨범때까지만 해도 퀸에는 스마일의 멤버였던 팀 스타펠이 베이스 주자로서 참여했습니다. 존 디콘도 이때 참여하고 있기는 한데, 무슨 이유인지 이 앨범에서만은 그의 이름이 "디콘 존" 으로 나와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팀 스타펠은 첫 앨범 발표 후 퀸을 탈퇴, 음악을 그만두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모형 제작을 업으로 삼게 됩니다. 오늘날 스타펠은 영화용 특수모형 제작의 전문가이자 그 분야의 강사이기도 하죠.

↑ 스타펠의 솜씨가 발휘되었던 BBC판 "히치하이커용 은하여행 안내서"


↑ "꼬마 기관차 토마스" 의 수많은 모형들 역시 스타펠이 만들었습니다.


조금은 부진한 듯한 첫 앨범에 이어 1974년에는 두번째 음반인 "퀸 II" 가 발매됩니다. 이 앨범에서는 아무래도 "세븐 시즈 오브 라이" 가 가장 유명한 곡이겠지만, 일부 비디오게임 팬들에게 가장 친숙한 곡은 오히려 B면 첫곡인 "오우거 배틀" 이 아닐까 싶네요.

↑ 너무나 유명한 재킷에 비해, 수록곡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음반입니다.


퀸의 전성기를 열게 되는 앨범은 동년 발매된 제 3집, "시어 하트 어택" 이었지요. 그 유명한 "킬러 퀸" 이 수록된 이 앨범을 통해 퀸은 영미권 뿐 아니라 세계 락무대에 그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첫 아시아 공연도 이때 가졌죠).

↑브라이언 메이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중에 제작된 퀸 3집. 음반을 거꾸로 돌리면 "브라이언 이즈 데드... 브라이언 이즈 데드..." 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주장....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메이가 수술을 받고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나머지 세 멤버들이 미리 녹음을 해놨는데, 메이가 회복한 뒤 녹음을 들어 보니 사운드가 휑하니 비어 있더라는 얘기도 유명하죠. 결국 3집은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솔로와 백업 보컬이 가장 많이 들어간 퀸 앨범이 되었습니다. ^^;
여담: 재킷을 보시면 드러머 로져 테일러의 머리카락이 굉장히 눈에 뜨이는데, 이게 사실은 "포샵질" 입니다. 물론 그때는 포토샵은 없었지만요-

불사라가 청소년기에 심취했던 인도 음악, 그리고 본고장인 영국의 락이 결합된 퀸의 독특한 사운드. 거기에 머큐리의 섬세하면서도 힘있는 보컬이 힘을 더해 주어, 퀸은 열다섯개의 스튜디오 앨범들과 다수의 실황앨범, 그외에 웬만한 집과 자동차에 하나씩은 꼭 비치되어 있는 수많은 "베스트" 컴파일레이션 앨범들을 내면서 락 역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찍게 됩니다.

하지만 미인 박명이랄지, 전력으로 인생을 음악에 불살랐기 때문인지(죄송) 불사라 자신은 1991년, 45세의 너무 이른 나이에 AIDS로 절명하고 맙니다. 오랜동안 부정해 오던 AIDS 와병설을 결국 시인한 지 하루만에 숨을 거두었죠.

불사라의, 머큐리의 빈자리는 큽니다. 그의 음악적 재능도 탁월했지만 그의 놀라운 가창 능력은 락음악계에서 그를 대신할 만한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그룹 퀸은 머큐리의 빈자리를 메꿀 길 없이 왕위에서 떠나가고 말았죠.

독창적인 음악 세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목소리에 남다른 무대 카리스마까지 가졌던 파로크 불사라 (=프레디 머큐리). 그를 아시아인 출신으로 세계를 뒤흔든 유일한 락스타, 아니 사상 최고의 천재 락 음악가로 칭하는 데 주저할 이는 없을 것입니다.


더 유명한 곡이 많습니다만 저는 이 곡이 좋더군요. "너의 날개를 펼쳐라" --


보너스: "아이 원 투 브레이크 프리" 비디오에서의 모습.
by Werdna | 2008/09/19 15:27 | 기타등등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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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LUE-PSY at 2008/09/19 21:34
보헤미안 랩소디는 진짜 명곡 중 하나죠.
여기 관련 포스팅이 하나..

http://cjhgogox.egloos.com/1810145


...
Commented by Werdna at 2008/09/20 12:07
재치가 넘치는 소시민님의 블로그로군요 ^^
Commented by draco21 at 2008/09/19 21:47
애사진을 보고... 어? 누구지? 하다가...
중간에.사우어 밀크에서... 엉? 이 냥반 말이지?...
그리고... 보헤미안 렙소디자켓을 보고 화들짝~~~ 했습니다. ^^:
몇년을 들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퀸입니다만...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군요. 혹시 이거 저만 모른걸까요.. ^^:
Commented by Werdna at 2008/09/20 12:10
파로크, 아니 프레디는 60년대에 이미 영국인으로 귀화를 했으니, 굳이 "나 파르시파 인도인이요" 하고 광고하고 다닐 필요를 못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공작새처럼 화려한 무대 모습 뒤에 자신의 사생활을 꼭꼭 감추고 싶어했던 건지도 모르죠.
에이즈로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투병설을 극구 부인하고,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도 그 일부인지도...
Commented by zolpidem at 2008/09/19 23:17
중학교 때 처음 그의 목소리를 접하고 얼마나 감동했었는지....
오늘의 주인공은 프레디였지만, 퀸의 멤버는 다들 학력도, 실력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기타를 치던 친구는 브라이언이 영국의 동전을 피크 대용으로 한다며 구하고 싶어 하기도 했었는데 말입니다.

Innuendo 앨범이 너무 훌륭했기에, 프레디의 죽음이 더욱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Commented by Werdna at 2008/09/20 12:13
제 친구도 기타를 잘 치는데, 브라이언 메이를 많이 부러워하더군요.
이유인 즉슨: "우리 아버지는 내 기타만 보면 때려부수는데, 브라이언네 아버지는 그의 기타를 직접 만들어 줬다더라" 라는 것 (이유가 좀...;)
Commented by 노타입 at 2008/09/20 18:00
어제 아내와 '노래를 잘 할수 있다면 누구의 목소리를 가져보고 싶나'라는 얘기를 나누는데 전 딱 프레디 머큐리를 짚었더랬습니다. 정말 기막힌 목소리죠. 인도인.. 즉 아시아인인건 정말 몰랐네요!
Commented by Werdna at 2008/09/22 00:01
파르시파 사람들은 인도인 중에서도 피부가 흰 편이고, 본인도 자신의 혈통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없으니...
그의 목소리는 정말 다시 나오기 힘든 물건이죠. 아쉽습니다 ㅠㅠ
Commented by bungaking at 2008/09/23 03:36
나이를 먹으니 전영혁 형님이 직접 골라준 브라이언 메이의 too much love will kill you 쪽이 마치 기다리는 사람처럼 더 불사라를 떠올리게 만드는건 여전히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Werdna at 2008/09/23 12:30
머큐리는 자신의 투병 사실을 팬들에게는 철저히 숨겼지만, 다른 멤버들은 벌써 눈치를 채고 있었다죠.
브라이언 메이 왈: "우리 모두 그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 우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Too much love wil kill you 외에도, 다가오는 종말에 대한 암시가 담긴 곡들이 제법 있답니다.
Commented by 애쉬 at 2009/06/11 14:28
프레디의 출생지가 잔지바르 섬입니다. ( '르'자가 탈락되었네요^^)
프레디의 부친이 영국 식민 총독부의 관료였기 때문에 잔지바르가 독립되면서 망명한 모양입니다.
잔지바르는 영국 함대의 위협사격에 개전 30분 만에 투항하여 식민지가 되었다네요
여행 프로그램 잔지바르 편에서 봤는데
현지의 사람들은 그 아버지 때문인지, 문화적 충격(?)을 주었을 사생활 때문인지 입에올리길 달가워하질 않데요
물론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라는 간판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곳은 몇군데 성업중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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