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쟁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 양산형 기동병기의 왕이 태어났다. 압도적인 성능의 적 기동병기에 제압당하던 연방이, 주력 기동병기의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 연방제 고성능 기동병기의 프로토타입은, 완성되어 연방 수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긴 여정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의 성능에 탄복한 연방의 수뇌는, 빠른 속도로 그 양산 시스템을 구축,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양산형 일호기가 조립라인을 빠져 나오기에 이른다. 이렇게 태어난 연방제 양산형 기동병기는, 그 제작 대수와 기체 성능 양면에서 명실공한 대전 최고의 양산기였다. 우수한 장갑과 뛰어난 기동력을 가졌으며, 극히 높은 생산성으로 양산기로서의 본분을 확실히 하고 있다. 다만, 다분 화려하고 용맹스러운 외형을 갖춘 적 기동병기에 비해 그 외형이 수수하기 (촌스러운?) 때문인지, 아니면 개전 초에 적 기동병기가 워낙 유명세를 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성능이 실제보다 열악한 것으로 인식되는 일이 적지 않다. 연방의 양산형은, 알고 보면 그 설계사상은 시대를 5년은 앞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했으며, 초기형이 롤아웃 될때만 해도 그것을 뛰어넘는 성능을 가진 물건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였다. 또 빠른 양산화를 위해 기체의 구성부들을 몇 부분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공장에서 제작했는데, 이때문에 기체의 거의 모든 부분이 표준화되어 어느 공장에서 제작된 기체이든, 또 어떤 마이너 체인지 버젼이든 간에 부품의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반면 적의 기동병기는 서로 다른 모델간에 부품 공유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 이처럼 좋은 성능, 높은 생산성, 거기에 야전에서의 유지보수가 용이하다는 점 등 덕분에, 이 양산형의 왕은 첫 생산된지 10년, 20년씩 (지역에 따라서는 40년까지도) 현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또 초기형이 생산된 직후부터 자잘한 성능 개량이 시작되어, 수많은 세부 개량모델이 존재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 연방의 새 양산형 기동병기가 첫선을 보인 곳은, 기동병기끼리의 싸움으로서 사상 최대라 일컫어지는 쿠르스크 대전에서였다. 적의 군세는 막강하였다. 바바로사와 오렐 등에서 맹활약했던 정예 "그로스도이치란트" 사단, 또 동서부 전선을 두루 섭렵한 제2 SS 기갑군단 등을 포함해 무려 50여개 사단으로 구성된 독일의 공격대. 게다가 독일의 자랑인 기동병기-전차-가 펼치는 속전속결의 기동전인 "블리츠크리이크" 는 그때까지 그 누구도 감당해내지 못한 필살의 전법이었다. 이에 대한 연방의 해법은 단순하였다: "설치게 놔두라..." 독일이 쿠르스크 진군을 위한 군세를 모으는 데 소비한 몇달 동안, 소비에트 연방은 이곳에 사상 초유의 거대한 방어진을 준비하였으며, 독일군이 그것을 돌파하려다 서서히 죽어가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연방의 작전이었다. 한쪽은 전광석화의 기동 돌격전을 예상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지옥같은 소모전을 마련해 두고 있는 상황이랄까. 독일군 수뇌도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쿠르스크로 진격을 감행하기로 한 데에는, 독일군이 자기네 기동병기에 대해 느끼는 큰 자부심이 한몫 하였을 것이다. 상대는 변변한 전차라곤 갖고 있지 않은 소비에트 연방 아니던가. 우리 제3제국의 전차 돌격전이, 여태까지 실패한 적이 있었던가- 하면서. 1943년 7월 4일, 쿠르스크 시 근교에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기갑 격전이 펼쳐졌다. 독일군과 연방 모두 각각 약 3천대의 전차, 2천~3천 대의 비행기, 그리고 약 백만명의 병사들을 쿠르스크에 투입했으며, 양측 모두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전투 개시와 동시에 비행기들은 폭탄과 기총소사를 퍼부었으며, 연방군의 야포들은 적진을 향해 쉴 새 없이 불을 뿜어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폭연 때문에 시야가 나빠지자 비행기들은 별다른 활약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아군과 적군이 엉겨붙은 혼전 상황에서 야포의 역할은 일단 끝이 났다. 이후 쿠르스크는 사람과 기동병기만의 싸움이 되었다. 작열하는 대지,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폭연 속에서 전차의 기동력은 0에 가깝게 떨어지고, 대형과 전선은 붕괴되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인지 알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싸움은 어느 한쪽이 거의 다 죽어야만 끝이 나게 될 것만 같았다. 전차와 전차가 지근거리에서 서로 포격을 주고받는 괴상한 전투, 전차 사이를 누비는 이백만 인파가 뿜어대는 총탄의 비. 밤이 되어 앞이 안 보이게 되서야 포성은 그치고, 다음날 새벽 햇빛이 비치면 다시 살육이 시작. 보름 남짓한 시간동안 약 60만명의 인간이 죽고, 천여대의 전차와 이천여대의 비행기가 파괴되었다. 이만한 아비규환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지옥은 텅 비었고, 모든 악마들이 여기 나와있다.") 이 접전에서 연방은 주축군에 대한 두번째의 (첫번째는 스탈린그라드) 큰 승리를 거두게 된다. "독일군이 90만명 중 5만명 죽고, 연방군이 130만명 중 50만명이 죽었다면, 어떻게 그것이 연방의 승리인가" 라는 의문을 갖는 이도 있겠지만, 아뭏든 연방은 쿠르스크를 지켜냈고 독일군은 패퇴하였으며, 많은 독일 정예 기갑사단이 괴멸했다. 게다가 이 싸움의 결과로 군 수뇌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히틀러는, 향후 세개의 전선에 걸친 전쟁을 전부 직접 세부지휘하려 들어 독일의 패망을 가속화시켰다 (반면 요지프 스탈린은 쿠르스크의 전과에 크게 만족하여, 향후 연방군의 수뇌들에게 전선 운영을 일임하게 되었다). 쿠르스크에서 독일 판처들을 압도한 2차대전 전차의 왕은 다름아닌 T-34 중전차 (medium tank). "우리에겐 그에 필적할 전차가 없다" 는 독일 육군소장 프리드리히 폰 멜렌틴의 말, 또 "댓수도 성능의 하나다" 는 요지프 스탈린의 말 등은 모두 T-34를 두고 한 말이다. ![]() 속도, 장갑, 화력, 생산성 모두에서 독일 판처를 압도하는 T-34/85. 그럼에도 독일 전차에 비해 저평가받는 경우가 많은 것은, 멋대가리없는 디자인 때문이라는 설이... (하긴, 독일 전차는 마이바흐죠;) ![]() 2차대전의 짐, T-34. 연방계 전차의 고전이죠. "어허~ 이게 또 웬 낚시성 포스트란 말인가" 라 꾸짖으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 글은 T-34 이야기인데 짤방은 RGM-79이고... 일년전쟁의 지온공국을, 이차대전의 제삼제국과 비교하는 일은 정말 많습니다. 당연하죠? 멋진 제복부터, 총사이자 선동가인 기렌 자비의 인종우월주의와 대량학살 등, 우연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 지구연방은 이차대전의 누구지?" 라는 질문이 자연히 나오는데, 대개 그 대답은 "연합군 아닐까" 라든지 "...미국?" 하는 정도로 흐지부지 끝납니다. 많은 건담팬들에게는 별로 관심도 없는 부분이구요. 이름이 "연방" 인데다가 그 마크가 붉은 바탕에 별과 낫(닻?)인데도, 지구연방 =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하게 되죠. ![]() 연방기.
![]() "별과 낫(?)" 인 연방 문양. ![]() GM이나 건담의 방패에서 볼수 있듯, 연방 문양의 바탕색은 원래 붉죠. 그런데 이 짐은 아까 즈고크한테 당한 그 짐이군요. 지구연방이 소비에트 연방을 닮았다는 것은 물론 농담입니다만, 기동전사 짐은 정말 T-34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우연이 아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요, 우선 둘 다 양산 직전에 그 프로토타입이 긴 행군을 통해 성능을 입증했으며, 둘 다 군수업체가 아닌 연방 군수창에서 제작된 물건이라는 점이 닮았죠 (반면 지온의 모빌수트와 독일의 전차는 민간기업 제품). 또 짐이 처음으로 크게 활약했던 것은 연방의 두번째 큰 승리에서였고 (첫번째 연방 대승리인 오데사 작전은, 연방군이 기동전사 없이 재래식 부대만으로 거둔 승리), T-34가 대활약한 쿠르스크 전투는 소비에트 연방이 독일에 대해 두번째 거둔 대승리였다 (첫번째는 스탈린그라드 공성전) 는 점도 유사점입니다. 그렇다 보니 "지구연방이 지온을 수세로 몬 것은 짐의 덕분이다" 라든지, "소비에트 연방이 독일군의 등뼈를 꺾은 것은 T-34의 공이 컸다" 라고 말하기가 껄끄럽죠. 짐과 T-34는 둘 다 연방의 승리에 공이 크긴 했지만, 그들이 등장한 것은 이미 승리의 여신이 연방에게 미소를 보내기 시작한 다음의 일이니까요. ![]() 우리에게는 안좋은 기억을 많이 남긴 T-34. 이건 인민군의 것인데, 수원 근처에서 다리를 건너다가 폭격으로 고립된 모습이라고 합니다. 또 GM과 T-34 모두 초기에 장비했던 주무장이 빈약해서 다른 주포를 장비한 모델들이 금방 등장했다든지, 또 그 서브-어셈블리를 여러 군수공장에서 나누어 담당했기 때문에 규격화 및 모듈화가 잘 되어 있었다든지 하는 세세한 유사점도 제법 있습니다 (덕분에 부품 공유성이 좋아서 유지보수가 쉬울 뿐 아니라, 용도에 따라 세분된 서브타입끼리도 부품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아까 스탈린이 했다는 말, "댓수도 기체 성능의 하나다" 라는 말은 제가 꽤 좋아하는 말입니다. 도즐 자비도 "전쟁은 머릿수다" 라고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는데, 두사람 전황의 대세는 소수 정예의 고성능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MG 건담은 딱 하나 샀으면서 짐과 자쿠는 나오는 대로 산다든지, "수퍼로봇대전" 게임에선 양산기를 풀개조해서 주력기로 쓴다든지 하는 것도 저의 양산형 사랑 때문일 겁니다. 올해 겨울이 많이 춥다고 하는데,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건프라라도 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최근 발매된 물건들을 보니 양산기가 없더군요 (HGUC 기라 도가 정도). 아쉬운 마음에, 양산형 러브러브 포스트를 올려 보았습니다. PS: 지온은 극소수의 엘리트 집단의 힘으로 그 몇십 곱절이나 되는 수의 민중을 정복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제삼제국도 극소수의 "마스터 레이스" 가 전 인류를 통치하겠다는 거창한 비젼을 갖고 있었죠. 두 나라 모두 그 사실 자체를 자신들의 우수성과 정당성을 입증하는 산 증거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렌 자비는 브리티쉬 작전을 통해 지구인들의 정신에 극복할 수 없는 충격을 주고자 했습니다. 브리티쉬 작전은 인간이 생각해 낸 군사작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완벽한 대파괴로, 단일 작전으로 지구 거주자의 절반이 사멸하고 그때 무수한 스페이스노이드들도 함께 희생되었죠. 그러나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 죽었는데도, 지구연방은 항복하지 않고 저항했습니다. 두사람 중 한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투지가 꺾이지 않았던 것이죠. 지온은 이후 룸과 지구강하 등 군사작전에서 연방의 군대를 손쉽게 압도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 전쟁은 브리티쉬 작전에서 이미 결론이 난 것입니다. 인구의 반을 죽이고도 그 정신을 꺾지 못했다면, 살아남은 반을 지온이 설령 군사적으로 제압하더라도 그들을 제대로 통치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이니까요. 소비에트 연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삼제국이 유태인을 많이 학살한 사실은 유명합니다만, 사실 이차대전에서 주축군의 손에 가장 많은 인구가 희생된 것은 바로 소련입니다 (총 사망자 일억육천팔백오십만명. 총 인구의 13.7%라죠;). 그럼에도 그들의 정신이 꺾이지 않고, 싸움에 싸움을 거듭해 결국 승리했다는 사실은... 음, 바로 옆에 붙어 사는 우리에게는 좀 불편한 느낌을 주는군요. 쓸데없는 얘기가 길었습니다. 깊은 밤 편안히 주무시길, 저는 지금부터 또 일해야 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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