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시대 권총 알고보니..."경악" (1) 완구잡상

우리나라 중년 남성이라면, 어린시절 "서부소년 차돌이" 라는 좀 괴이한 애니메이션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차돌이" 라는, 이름만 봐서는 한국 어린이임이 분명한 주인공이 서부시대 미국을 배경으로 악당들과 총싸움을 하는 액션물이었죠.

↑ 맨 오른쪽에 있는 캐릭터가 서부소년 차돌이. 그나저나 "어린이 왕국" 은 커녕, 나이든 아저씨/아줌마가 아니면 본적도 없을 캐릭터들이 즐비하군요.


↑ 얘가 차돌이(이사무). 완전 어린이로 나오는 아니메판 차돌이에 비해, 만화판 이사무는 좀 나이들어 보이는군요.


↑ 여담입니다만, "동양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서부극은 또 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TV에서도 방영해준 적이 있는 "쿵푸" 가 그것으로, 소림사 스님인 콰이 창 케인이 주인공이죠. 주인공 케인을 연기했던 배우는 데이빗 캐러딘인데, 나중에 "킬 빌" 에서 최종보스 캐릭터인 "빌" 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차돌이는 동양무술도 잘하지만 무엇보다도 속사술의 명수여서, 총을 하나만 들었을 경우 "패닝" 이라는 기술을 사용하여 순식간에 수많은 적들을 제압합니다. 주무기는 콜트 M1873, 통칭 "싱글액션 아미" 라는 권총이었죠.

↑ 패닝(fanning)이란, 위 그림처럼 피스톨의 방아쇠를 당긴 채로 왼손으로 해머를 빠르게 반복적으로 당겼다 놓으므로써 속사를 하는 기술입니다.


차돌이 말고도, 옛날 우리나라 방송은 서부극이 대세였습니다. 주말의 명화로 방영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OK 목장의 결투", "황야의 무법자", "무숙자", "쟝고", "내 이름은 튜니티" 등 수많은 서부극들, 그리고 연속극으로도 "보난자", "초원의 집" 같은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인기 있었죠.

그런데 어떤 작품이든 간에 서부극이라면 무조건 등장하는 것이 각종 총기입니다. 서부시대는 총의 시대였으니까요...심지어 가족 드라마인 "초원의 집" 에서도 가장인 찰스 잉걸스가 애용하는 라이플이 등장하며, "쿵푸" 에서도 주인공은 총을 쓰지 않지만 악당들은 대개 총잡이들입니다.

그 영향으로, 당시 남자 어린이들은 전부 총잡이였습니다. 저 역시 플라스틱제 보안관 별과 "쌍권총", PVC제 총집과 탄띠 같은 것을 갖고 놀았더랬습니다.

↑ 기억은 잘 안나지만, 대충 이런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M1873 포병모델이군요.


나이 먹을만큼 먹은 지금에 와서도, 서부영화가 새로 나오면 꼭 보게 되고, 특히 총싸움 장면에선 화면을 정지시켜 가며 총기의 고증이 정확한지 아닌지 따위를 신경쓰곤 합니다. 또 에어건이나 모형권총으로 서부시대 총기류가 나오면 꼭 체크하곤 합니다 (네, 철들려면 멀었습니다...)

↑ 존 웨인 주연의 "진정한 용기 (True Grit)", 1969년작. 루스터 콕번(존 웨인)이 네드 페퍼 갱과 대결할 때 쓰는 라이플은 "윈체스터 M1892" 라는 아주 유명한 총입니다만, 사실 이 영화의 배경은 남북전쟁 직후인 1870년대입니다...


↑ 같은 소설을 코엔 형제가 다시 영화로 만든 2010년작 "진정한 용기" 는 "진정한 총기" 라고 할만큼 각종 서부시대 총기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총기류 고증도 제대로 된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라고 하긴 뭣합니다만, 서부시대를 주름잡았던 권총들에 대해 살펴보는 포스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 개인의 취향에 따른 포스트이므로 아무래도 내용이 편파적이 될 것 같습니다만 (즉 콜트 M1873 위주), 아무쪼록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서부시대" 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대충 이런 것이죠. "인디언", 기병대, 역마차, 카우보이 등등.. 그러나 이 사진에 나온 인물들은 모두 20세기 초 (1909년경), 서부시대 쇼를 공연하며 미국을 순회하던 곡마단(?)인 "버팔로 빌 와일드 웨스트 쇼" 극단의 일원입니다. 서부영화나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그리고 우리가 미국 서부시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카우보이, 총싸움, etc.) 중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보다는 이들 서부시대 쇼의 내용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죠.


때는 19세기, 장소는 미국. 군인, 경찰(보안관)은 물론이고, 민간인도 사나운 야생 동물과 적대적인 원주민에 대항하기 위해 총기로 무장하던 때입니다. 처음엔 부싯돌을 충돌시켜 불똥을 일으켜 발사하는 수발총(燧發銃, flintlock gun)이 대세였습니다만, 뇌관(primer)을 이용하는 뇌관총(雷管銃, cap lock gun)이 발명되자 순식간에 그 왕좌를 빼앗겼죠.

↑ 수발총의 부싯돌이 부딛혀 불똥이 튀는 장면. 이 불똥이 화약에 불을 당겨 총알이 발사됩니다.


↑ 뇌관총의 대표주자였던 스프링필드(위)와 엔필드(아래) 머스켓. 초기 뇌관총은 부싯돌 대신에 뇌관을 사용한다는 것이 다를뿐, 구조는 수발총과 거의 똑같았습니다.


수발총에 비해 여러가지 장점이 있었던 뇌관총입니다만 (비가 오는 날도 쓸수 있는 등), 한발 쏘고 나면 장전을 다시 해야 한다는 점은 수발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금속제 탄피에 화약과 뇌관, 탄환까지 세트되어 있는 카트리지는 아직 발명되지 않은 시절이라, 말은 "장전" 이라고 짧게 합니다만 실제론 1분 남짓 걸리는 일련의 수작업이었습니다.

↑ "일발 장전!" 뇌관총의 장전 순서. 순서대로 왼쪽 위: 약실에 화약을 채웁니다. 오른쪽 위: 화약 위에 탄환을 올립니다. 왼쪽 아래: 탄환을 꾹 눌러서 화약을 다져줍니다. 오른쪽 아래: 뇌관을 끼워줍니다.


뇌관총이라는 게 이처럼 쓰기 까다로운 물건이다 보니, 접전이 일어날 경우 재장전을 해가며 총을 쏘는 것은 무리였죠. 때문에 당시 군인들은 "큰 총" (라이플), "작은 총" (피스톨), 그리고 샤벨이나 보위 나이프, 총검같은 백병전 무기를 순서대로 전부 사용해가며 싸웠다고 합니다.

↑ 남북전쟁 당시 미군 기병의 표준무장: 스펜서 카빈, 콜트 M1860 리볼버, 그리고 1860식 기병용 샤벨.


당시 군인들은 한번 장전해서 여러번 연속해서 쓸 수 있는 요술총 같은게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던 모양인데,이 이야기가 새뮤얼 콜트라는 총덕 소년의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농장의 일꾼이었던 콜트 소년은 일하는 중에도 머릿속에 이 요술총의 원리를 궁리해 뒀다가, 어른이 되어 실물로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대차게 말아먹은 "패터슨" 리볼버입니다...

↑ "방아쇠가 없다?" 해머를 젖혀야 방아쇠가 튀어나오는 다소 특이한 구조의 패터슨.


↑ 콜트의 연발권총 외에도 한번 장전해서 여러번 쏠 수 있는 권총이 있었습니다만, 총의 무게에 비해 장탄수가 적어서 결국 도태되고 맙니다. 사진은 샤프스의 .22구경 "페퍼박스" 연발 피스톨.


한번 장전해서 다섯번을 쏠 수 있는 신기한 권총이라는 말에 혹해서, 텍사스 공화국군이 패터슨을 소수 납품을 받아 실전부대에 지급하기도 했습니다만, 이놈은 시제품에 가까운 물건이었던지 기계적으로 너무 약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잦은 고장과 파손으로 평판이 나빴고, 콜트의 첫 회사인 "특허 총기 회사(Patent Arms Company)"가 파산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죠.

(사족입니다만 이때 텍사스는 미국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연발 권총의 잠재력은, 이것을 써본 텍사스 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텍사스 레인저의 새뮤얼 워커 대위가 개인적으로 새뮤얼 콜트를 찾아와서 그 연발 권총의 개량형을 좀 더 만들어 달라고 하게 되고, 콜트가 패터슨의 실패를 초석으로 삼아 만들어낸 권총이 바로 "콜트 워커" 입니다.

↑ 1847년작, 콜트 워커. 클릭하면 왕창 커집니다. 잘 보시면 총의 리시버 (프레임, 즉 총의 본체에 해당되는 부분) 부분과 장전봉 (총신 아래에 붙은 기다란 막대) 이 뭔가 얼룩덜룩하게 변색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케이스 하드닝" 이라는 열처리의 흔적입니다.


실전 사용자인 워커 대위의 조언을 적극 반영하여 만들어진 워커 권총은, 5연발이었던 패터슨보다 장탄수를 한발 늘려 6연발 .44구경 리볼버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당시엔 구경을 정하는 법이 지금과는 좀 달랐던지라, 워커는 요즘 기준으로 하면 44구경이 아니라 .457 구경입니다만...). 또한 화약의 양도 증강하여, 탄 하나당 60그레인 (3.9그램) 의 화약을 쓰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는 당시 일반적인 권총용 화약의 두배 분량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총 자체의 크기도 커져서, 무게 2.06킬로그램, 길이 39.47센티미터의 거대한 권총이 되고 말았습니다.

↑ 콜트 M1911과의 크기비교. 보시다시피 워커는 무지무지 큰 피스톨입니다.

게다가 당시 레인저들은 권총을 기본적으로 두 자루씩 휴대하였기 때문에, 워커 피스톨 한쌍을 장비하게 되면 권총의 무게만 4킬로가 넘었습니다. 때문에 텍사스군은 이 거대한 피스톨을 넣을 수 있는 대형 총집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지급했는데, 이 총집은 사람이 허리에 차는 벨트식이 아니라 말 안장에 걸치는 거치식 총집이었습니다.

↑ 말안장 총집이란 바로 이런 물건이죠. 레플리카입니다만...


발군의 파워에도 불구, 워커 피스톨은 너무 무거운데다 아직도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발사할 때마다 장전봉(loading rammer)의 고정이 풀린다는 것이 큰 문제였죠.

아까 보셨듯이, 뇌관총은 먼저 화약을 약실에 넣고, 그 위에 탄환을 얹은 뒤 꾹~ 하고 눌러줘야 합니다. 장전봉은 그 꾹~하고 누르는 역할을 하는 장치인데, 장전봉을 총신에 고정해주는 스프링이 헐거워지면 총을 발사할 때의 충격으로 장전봉이 (위의 사진처럼) 아래로 툭 떨어져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장전봉 끝부분이 약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당연히 약실이 회전을 하지 못하게 되므로 총의 기능이 멈춰 버리는 것이죠.

게다가 워커는 워낙 많은 양의 화약을 사용하는 총이다 보니, 약실관, 즉 실린더가 폭발해버리는 일도 많았다고 하네요. 특히 서둘러 화약을 넣다가 약실 주변에 화약을 흘리게 되면, 뇌관에서 발생한 불똥이 흘린 화약을 타고 번져 약실 여섯개에 든 화약을 전부 한꺼번에 폭발시켜 실린더를 터뜨리곤 했다고 합니다.

↑ 워커 피스톨의 액세서리. 화약병 (왼쪽 아래), 탄환 (작은 구슬), 그리고 뇌관을 담은 깡통 (오른쪽) 이 한 세트입니다.


이렇게 아직은 문제가 많은 물건이었지만, 워커 피스톨은 새뮤얼 콜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권총이었습니다. 텍사스군에게 납품한 1,000정의 피스톨을 생산할 때, 콜트는 100정을 더 만들어 민간시장에 내다 팔았죠. 여기서 얻은 수입으로 콜트는 파산지경에서 벗어나 자신의 공장을 자그마하게나마 열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워커 피스톨은 원래 적은 수만이 만들어진데다 실린더가 폭발해서 폐기된 물건도 많은 관계로 지금은 찾아보기 아주 힘든 레어 아이템입니다. 경매에 나올 경우 한정에 수십만 달러를 호가하는 물건이죠.

↑ 여담입니다만 새뮤얼 워커 대위는 멕시코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피스톨이 세상에 나온 바로 그 해(1847년)에 죽었죠.


자기 공장을 차린 새뮤얼 콜트는, 워커의 디자인을 개량하여 1848년 후속타인 콜트 M1848, 통칭 "드래군" 을 내놓습니다.

↑ 콜트 M1911과의 크기 비교. M1848은 워커보다는 작지만 무게 1.92킬로그램, 총 길이 37.5센티미터로 여전히 큰 권총이었습니다. 참고로 "드래군" 이라는 이름은 후세 수집가들이 M1848에 붙여준 별명인데, 기병들이 사용하던 권총이라는 뜻에서 용기병, 즉 드래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M1848은 워커보다 약간 가볍고 작은 권총으로, 사용하는 화약의 양이 워커보다 적고 (워커는 60그레인, M1848은 50그레인), 장전봉이 이탈하는 것을 막는 잠금쇠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워커와는 달리 카트리지 방식의 탄을 사용한다는 것이 워커와 M1848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죠.

↑ 총 위에 올려져 있는 하얀색 담배 꽁초같이 생긴 것들이 바로 "카트리지" 입니다. 아래 둥근 깡통은 뇌관통이구요.



↑ 이 시절의 카트리지는 이렇게 종이로 된 물건이었습니다. 탄환과 화약을 종이로 싸서 담배처럼 한 개피로 만든 물건이죠. 이것을 쓰면 화약을 약실에 넣다가 흘릴 일이 없기 때문에, 실린더가 폭발하는 따위의 사고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 코엔판 "진정한 용기" 의 한장면. 여주인공 매티가 아버지의 원수에게 콜트 드래군을 겨누고 있습니다.

↑ 참고로 "은하철도 999" 의 주인공인 철이(테츠로)의 권총인 "코스모 드래군" 의 모티브가 바로 콜트 드래군이라고 합니다. 드래군은 부/모를 잃고 어른과 함께 여행하는 어린이의 무기?


M1848은 워커의 여러 문제점이 개량된 총이었습니다만, "장기간 휴대시 저절로 분해가 되어 버린다" 는 문제가 고쳐지질 않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워커, 드래군, 네이비, 싱글액션 아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부시대 콜트 리볼버에서 발견되는 고질적인 문제인데, 설명을 드리자면:

위 사진에서, 맨 왼쪽에 나무로 된 통짜 그립이 있고, 그 오른쪽 아래에 권총 손잡이의 뒷부분을 이루는 황동제 "백스트랩" (빨간 화살표) 이 있으며, 그 오른쪽에 메인 스프링, 그리고 그 오른쪽에 방아쇠울, 즉 "트리거 가드" (파란 화살표) 가 있습니다.

백스트랩과 방아쇠울은 권총의 본체인 "리시버 (프레임)" 에 총 다섯개의 나사로 고정이 되는데 (이점은 모든 서부시대 콜트 권총들이 똑같습니다), 이 나사들은 아무리 튼튼하게 조여놔도 권총이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풀어져서 결국 완전히 풀려 버리곤 합니다. 특히 말안장 총집에 꽂아둔 피스톨의 경우, 말이 달리면서 총이 계속 흔들리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아주 심각했다고 합니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실전 상황에서 권총을 뽑았는데 손잡이가 떨어져버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담입니다만, 재미있게도 콜트 서부 권총을 재현한 레플리카들도 전부 이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서부시대 콜트 권총들 역시 마루신, 다나카 등 메이커를 막론하고 이 나사들이 계속 헐거워집니다 (특히 다나까 제품보다 더 무거운 마루신 제품이 심합니다).

요새같으면 록타이트 같은 것을 조금 발라주면 되겠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없었죠. 때문에 콜트사가 제공하는 작은 멀티툴, 또는 별도의 스크루드라이버를 사용해서 나사들을 하루 한번씩 조여주는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 콜트 멀티툴. 일자 드라이버, 뇌관공 조임 렌치, 그리고 뇌관공 뚫기용 핀이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사진은 패터슨 피스톨용이군요 --;


이런 문제가 있긴 했지만, 워커에 비해 신뢰성이 향상된 콜트의 "연발 권총" M1848은 호평을 받았고, 2만정이 넘는 M1848이 미군에게 납품되었습니다. 이들중 대다수가 멕시코와의 전쟁, 그리고 1860년대의 남북전쟁때 사용되어 많은 인명을 앗아갔죠.

드래군의 인기에 힘입어, 민간용으로 드래군의 소형판도 개발되었습니다. 통칭 "베이비 드래군" 을 비롯해 몇가지 모델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이 M1849 "포켓 피스톨" 이었죠. 이들 소형 권총들은 .31구경에다 무게도 737그램으로 가벼워서, 말안장 총집이 없이도 충분히 개인 휴대가 가능한 물건이었습니다.

↑ 길이 22센티미터인 "베이비 드래군" 과 M1911의 크기 비교. 어른 손으로 잡기엔 좀 작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작습니다.


콜트 소형 권총들의 특징은, 워커나 드래군처럼 기계식 장전봉이 부착되어 있지 않고 장전을 위해서 권총을 일부 분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점은 군용 권총이었다면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되겠지만, 민간인이 호신용으로 휴대하는 권총이니만큼 빠른 장전보다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죠.

↑ 분해를 하면 실린더 회전축이 노출되는데, 이것을 장전봉으로 사용해서 장전을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군 장교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M1849같은 포켓 피스톨을 장만해서 휴대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실전에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상을 입었을 때 군의가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려 하면 이 피스톨을 뽑아서 절단을 못하게 위협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있죠.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당시 의술의 수준을 생각하면 농담처럼 들리진 않습니다...

이들 소형 권총은 "포켓" 피스톨이라는 이름이 있긴 했습니다만, 진짜로 포켓에 넣는 것보다는 (당장 호주머니에 740그램짜리 쇳덩이를 넣고 걸어다녀 보십시오) 벨트 아래에 찔러넣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오발의 위험도 있고, 또 오발이 되었을 경우 총기 소지자는 치명상을 입거나 영 안좋은 곳을 다칠 가능성이 높아지죠.

때문에 이런 물건이 등장하게 됩니다:

↑ "슬림짐" 스타일의 권총집. 권총집도 다양한 디자인이 있습니다만, 그것까지 이야기하면 포스트가 너무 길어지므로 패스.


휴대용 권총집 ("홀스터") 은 권총을 소지자의 신체에서 어느정도 떨어지도록 하여 오발시 부상을 막아주고 (최악의 경우 발등 부상), 또 권총을 비교적 단단히 잡아주어 오발의 가능성도 줄여주는 물건이었습니다. 또 나중에 호레이스 스미스/대니얼 웨슨 콤비가 금속제 일체형 카트리지 (복잡하게 말했습니다만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총알" 이죠...) 를 내놓은 뒤에는, 다량의 카트리지를 벨트에 꽂고 다니도록 하여 권총과 탄약을 함께 수납하는 편리한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 일체형 총집 벨트는, 당시 사람들에겐 스마트폰에 맞먹는 편리한 발명품이었습니다.


휴대전용 총집이 개발되자, 콜트는 "저런 물건에 총을 넣어서 다닐 거라면, 권총이 좀더 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본격적인 개인 휴대용 권총의 개발에 착수하여 콜트 M1851, 통칭 "네이비" 6연발 피스톨을 개발합니다.

↑ 기본적으론 민수시장 판매용으로 개발된 M1851은, 예쁜 상자에 액세서리와 함께 담은 "박스셋" 의 형태로 판매되기도 하였습니다. 박스셋도 수집가용과 일반용으로 차별화되어, 수집가용에는 멋진 장식까지... (예나 지금이나 장사하는 사람들 생각하는 것은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 M1851과 M1911의 크기비교. 네이비는, 생긴건 비슷해도 워커나 드래군보다는 꽤 작은 피스톨입니다.


M1851은 개인 휴대총기로 개발된 물건이니만큼, 화력을 좀 희생하더라도 무게와 크기는 줄이는 방향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때문에 사용하는 탄환은 .36구경으로, 군용인 워커나 드래군의 .44구경보다는 작지만 포켓 피스톨용 .31구경보다는 큰 물건을 발사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린 대로 당시 구경은 지금의 구경과는 달라서, .36구경은 오늘날엔 .375구경 (.357이 아닙니다) 에 해당합니다.

화약의 양도 줄어서, 25그레인 (1.62그램), 즉 드래군의 절반어치 화약만을 사용합니다만, 민간용으로는 충분한 위력이 나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실험을 해본 결과 25그레인의 화약과 80그레인 납탄을 사용하여 총구속도가 1100fps, 즉 시속 1200킬로미터 (마하 1) 의 탄속을 얻을 수 있다네요. 현대식 권총으로 .36구경 (= 약 9.1밀리미터) 과 유사한 9밀리 루거탄 (=파라벨럼탄) 을 발사하면 대개 총구속도가 1300fps 근처로 나온다고 하니까, 네이비는 충분히 강력한 권총이었던 셈입니다.

↑ 아까 나온 사진이지만... 코엔판 "진정한 용기" 에서 루스터 콕번 (제프 브리지스 분) 이 사용하는 권총이 바로 M1851입니다.


이처럼 경량화/소형화된 M1851은, 무게 1.19킬로그램, 길이 35.5센티미터의 적당한(?) 크기로 태어났습니다. 강력한 자동권총이 주먹만한 크기로 만들어지는 현대의 기술로 보자면야 전혀 작고 가볍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만,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엔 "콜트사엔 외계인이 포로로 잡혀 있다!" 는 말이 나올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 그래서 이런 영화도 만들어지고... (죗송).


↑ 참고로 영화 "더티 해리" 에 나오는 거대한 권총인 스미스-웨슨 모델 29가, 콜트 네이비와 엇비슷한 크기의 권총입니다 (무게 1.37킬로그램, 길이 30.5센티미터). 하지만 이쪽은 .44 매그넘이라는 거대한 탄을 쓰는 권총이죠.


그런데 M1851을 오늘날 수집가들이 부르는 이름인 "네이비" 는, 이 총이 미 해군에 납품되었다든가 하는 이유로 붙은 별명이 아니라, M1851의 실린더에 각인된 그림 때문입니다.

이 각인은 텍사스 해군이 캄페체 해전에서 멕시코 해군에게 거둔 승리를 그린 그림인데 (잘 안 보이시죠?), 이 해군 그림이 각인되어 있다고 해서 나중에 "네이비 (해군)" 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하네요. 또 .36구경 탄환을 당시에 "해군 구경" (naval caliber) 이라고 불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설은 진위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 M1851의 분해 모습. 이 모델은 기계식 장전봉이 부착되어 있습니다만, 장전봉이 따로 없는 M1851도 있습니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실린더 회전축도 장전봉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져, 부분 분해를 통해 탄을 장전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적당한 크기와 파워를 지닌 M1851은 대량으로 생산되어, 무려 27만정이 팔렸습니다. 영화속 인물인 루스터 콕번 말고도 실존인물인 와일드 빌 히코크, 닥 할리데이, 네드 켈리 등이 모두 이 총을 사용했죠. 또 해외 수출도 많이 해서, 유럽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팔려나갔습니다.

이때 콜트는 미국과 런던의 공장을 풀가동해도 M1851의 수요를 맞추기가 빠듯했던지라, 한동안 신제품 개발에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숨통이 트일 때 개발한 제품이 바로 새뮤얼 콜트 (1814~1862) 최후의 작품인 M1860, 통칭 "아미" 입니다.

↑ M1911과의 크기비교. 무게 1.22 킬로그램, 길이 35.5 센티미터의 큰 권총입니다만...


↑ 콜트 워커 (맨 왼쪽), M1848 드래군 (중간), 그리고 M1860 아미 (맨 오른쪽). 모두 .44구경의 군용 권총입니다만, 총 자체의 크기와 약실(실린더)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M1860의 총탄은 .44구경이지만, 사용하는 화약의 양은 30그레인으로 .36구경 민간총인 M1851보다 약간 많은 정도입니다. 때문에 탄속은 다소 떨어집니다만 (약 820fps) .44 탄의 질량 때문에 그 정도로도 군이 요구하는 파괴력을 충족했던 모양입니다.

↑ 당시 미군이 "인명살상에 충분한 파괴력" 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1인치 두께의 소나무 판 (비건조 상태) 을 관통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이비 드래군" 시리즈조차 그정도 위력은 충분히 갖고 있었죠.


↑ 커다란 .44구경탄에 비해 사용하는 화약의 양은 적기 때문에, "아미" 의 실린더는 앞은 크고 뒤는 작은 특이한 생김새입니다.


↑ M1851 "네이비" (좌) 와 M1860 "아미" (우) 의 비교사진. 사실 "아미" 는 "네이비" 의 리시버(프레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신의 크기가 다르고, 특히 그립(손잡이)의 크기가 아미가 훨씬 크죠.


민간인의 호신용으로 만들어진 M1851에 비해, M1860은 군용무기로 만들어져 남북전쟁(1861~1865) 내내 수많은 인명, 그것도 같은 미국인들의 목숨을 빼앗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콜트의 공장이 있었던 코넥티컷 주는 북군(유니언)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아미" 는 북군의 주력 권총으로 사용되며 약 20만정이 생산, 군납되었습니다. (전쟁통에 콜트 공장에 불이 나서 홀랑 타버렸는데도 이만큼 만든 것입니다.)

( 사족-- 그럼 남군(컨페더러시)의 주력 권총은? 이쪽은 민수용이었던 "네이비" 를 들고 싸웠습니다. 농업경제 위주였던 컨페더러시에는 총기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스미스&웨슨- 메사추세츠주, 레밍턴-뉴욕주. 전부 유니언이었습니다), 남북전쟁 이전에 받은 군납품, 개인 소유 총기, 그리고 그것들을 복제한 카피품들을 들고 싸웠죠. 돈은 컨페더러시가 훨씬 많았는데도... 아직까지도 미국인들이 총기 소유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이때의 잔재일지도? )

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를 쓰거나 읽다보면 마음이 어지러워지곤 합니다. 더구나 남북전쟁같은 내전 이야기는 더더욱...
여기서 아름다운 경치 사진을 좀 보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남북전쟁 이후의 서부시대로 넘어가기로 하죠.



덧글

  • peterk 2013/04/03 20:28 # 삭제 답글

    이륜차와 일인칭 던전 롤플레잉게임 이란 공감대 덕분에 항상 즐겁게 들렸습니다.
    옥의 티가 발견되어 멋진글에 완성도가 아쉬워서 눈팅?만 하다가 댓글을 달아봅니다.
    740kg짜리 권총과 그걸 견뎌내는 바지는 과학의 영역을 훨씬 넘어 마법의 영역이 아닐까요^^;
  • 워드나 2013/04/06 19:33 #

    푸하하! 지적 감사합니다. ^^
  • 2013/04/21 20: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01 12: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 2016/08/15 00:19 # 삭제 답글

    좋은글 잘봤씁니다
    궁금한게 하나있는데요
    석양의 무법자 보면 권총에 탄피를 사용하던데 이건 한창 후의 일인가요
    여짓것 영화를 보며 탄피 사용하는줄 알았는데 머스킨 총처럼 화양집어넣고 총알 집어넣고 한다는게 놀랍네요 ^^
  • 워드나 2016/08/18 23:39 #

    석양의 무법자는 남북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실제로 당시에는 금속제 탄피가 있는 탄이 발명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고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클린트 이스트우드)이 사용하는 총이 콜트 네이비(1851)이긴 합니다만 잘 보시면 종이로 싼 총탄이 아니라 금속제 탄피 카트리지를 넣도록 개조된 컨버전 피스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총이 처음 나온 것이 1859년 아니면 1860년이었다고 하니 남북전쟁(1861~1865) 중에는 실제로 이런 총이 있었던 것이죠.

    물론 당시엔 아직 금속제 카트리지는 그리 많이 쓰이지 않았고 남북군 모두 종이 카트리지나 화약+탄환을 따로 장전하는 총을 주로 사용했습니다만, 군대의 경우 재장전을 하는 동안 계속 총을 쏴주는 동료들이 있으니 재장전 속도가 좀 느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석양의 무법자 등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전부 혼자 싸워야 하는 이들이므로 조금이라도 장전 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이런 최신형 총에 투자를 한 것이겠죠.
  • :) 2018/05/07 15:47 # 삭제 답글

    쿵후 의 주인공 역은 원래 브루스 리 (이소룡)이 맡기로 했었는데... 저 배우로 바뀌었다고
  • ㅇㅇ 2018/08/26 19:44 # 삭제 답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연극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효다 2021/02/01 23:14 # 삭제 답글

    잘 읽고 갑니다! 미국 역사와 서부개척시대에 관심이 많고 관련 영화들도 많이 보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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